창건 및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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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普門寺)는

신라 선덕여왕 4년( 635년)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 하던 중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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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당시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고 하고,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보문사라 이름 짓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산과 절의 이름이 모두 관세음보살을 상징하고 있어 보문사가 관음도량임은 창건의 역사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 보문사를 창건한지 14년 만인 649년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보살 등 스물 두 분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석굴 법당에 모신 나한전 조성 일화는 유명하며 기도의 영험을 많이 보여 신통굴로 불리기도 합니다. 나한전의 역사는 보문사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인천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자리하고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입니다.
석모도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 마애 관세음보살님은 탁 트인 서해를 바라보며 중생들을 살펴주고 계십니다. 보문사는 나한전에서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 기도 할 수 있는 나한도량으로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01. 기이한 발견

01. 기이한 발견

신라 진덕왕 3년의 봄, 만선을 꿈꾸며 그물을 걷어 올린 보문사 아랫마을 어부들은 경악했다.
물고기 대신 사람의 이목구비를 섬뜩하게 닮은 기이한 돌덩이 22개가 올라온 것이다.
어부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덩이들은 마치 사람 모습과도 꼭 닮아있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어부들은 석상들을 바다에 내던지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쳐 다시 그물을 쳤다.
하지만 한참 뒤 걷어 올린 그물에는 아까 내던진 바로 그 석상들이 보란 듯이 다시 걸려 있었다.

공포에 질린 어부들은 그물마저 팽개치고 쫓기듯 육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어부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맑은 얼굴에 훌륭한 풍모를 한 노스님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02. 인도에서 온 성인들과 신령한 석굴

02. 인도에서 온 성인들과 신령한 석굴

″우리는 서천축국(인도)으로부터 왔느니라. 나와 더불어 스물 두 성인이 돌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돌배를 돌려보내고 물 속에 있다가 그대들의 그물을 따라 올라왔더니 두 번씩이나 우리들을 다시 물 속에 넣어 버리더구나.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부처님의 무진법문과 중생의 복락을 성취하는 길을 전하러 온 것이다. 그대들은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명산으로 안내해 주기 바라노라.

그 인연과 공덕은 후손들까지 길이 누리게 될 것이니라.″

03. 성인들이 선택한 자리

03. 성인들이 선택한 자리

날이 밝자마자 어부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어제 석상을 던졌던 그곳에 그물을 던지자, 신기하게도 스물두 체의 석상이 얌전히 그물을 타고 올라왔다. 어부들이 정성을 다해 석상들을 낙가산으로 옮기던 중, 보문사 석굴 앞에 이르자 갑자기 석상들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텅 빈 석굴 안에서 은은한 향기와 함께 낭랑한 불경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명당임을 직감한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굴 안에 들어갔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그리고 열아홉 분의 나한님을 좌대에 차례로 모시자, 굴 안은 엄숙하고 신비로운 영기로 가득 찼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엎드려 성스러운 기운 앞에 거듭 절을 올렸다.

04. 빈두로존자의 축복

04. 빈두로존자의 축복

그날 밤 꿈에 노스님이 다시 나타나 ″그대들의 수고로 장차 무수한 중생들이 복을 빌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먼저 복을 줄 것이니 받은 복을 함부로 쓰지 말며 교만하거나 자만심을 버리라.
악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곧 복을 걷어들일 것이니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복덕을 갖춘 아들을 점지할 것이니라.″

노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어부들에게 옥동자를 안겨 주고는 계속 말씀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 노승을 빈두로존자라고 부른다네. 우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보살님을 함께 모시고 왔으니 나와 더불어 나머지 열 여덟 분은 모두 부처님의 수제자들이라네.” 어부들뿐만 아니라 보문사의 스님들도 같은 꿈을 꾸었으며 모두 그 신령스러움에 감탄하였다.

05. 신통굴

05. 신통굴

그 후에도 나한전에서는 석굴 법당 앞의 “신기한 약수”와 고려왕실에서 하사받은
“깨지지 않는 옥등잔” 등 신비한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나한전은 기도의 영험함으로 사람들 사이에 신통굴로 불리기도 합니다.

마애관세음보살 좌상

마애관세음보살 좌상

보문사의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 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더불어 낙가산 눈썹바위 아래에 조성한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32척)와 너비 330cm(11척)에 달하는 이 거상(巨像)은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회정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며 창건한 보문사는, 비록 마애관음좌상의 역사는 짧을지라도 3대 관음 성지이자 영험한 소원 성취의 기도처임을 상징하는 핵심 불상입니다.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고 전해지며, 그 영험함을 찾는 신도들의 발길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